뒤안/읽고 또 읽고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
희미한풍경
2008. 1. 30. 03:17
<채식주의자>
이 책은 2005년에 <몽고반점>으로 제29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 강씨의 연작 소설집이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작가는 10년 전, 한 여자가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를 화분에 심는다는 이야기 『내 여자의 열매』를 집필하였다.
음악에서 변주곡이 있는 것처럼 그 소설의 연속선상에서 읽혀지는 글이 바로
이 소설집 속의 세 작품, <채식주의자>, <몽고반점>,<나무불꽃>이다.
사람은 동물인데 식물처럼 될 수도 있다는 아주 기발하고도 기이한 생각이 소설의 모티브라니
소설가의 상상력의 한계가 어느 쯤인지 평범한 나로선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2주 전쯤 예스24에서 아이들 책 수십 권을 사면서(황금가지의 애거서크리스티 전집) 눈에 띄어 구입했다.
책을 미리 쫘악 훑어보지 못하는 인터넷 서점인지라,나는 좋아하는 작가이면서 독자평도 괜찮으면 책을 골라드는 편이다 .
소설가 한강씨를 몇년 전에 신문에서 본듯 했고, 어느 유명한 작가의 딸이라고 해서 내 눈길을 끌었지 않나 싶다.
알고보니 아버지가 소설가 한승원씨이다.
한승원씨는 <아제아제 바라아제>,<포구>,<동학제>,<멍텅구리배>로 알려진 중견작가이고,
1988년에 <붉은방>의 임철우씨와 함께 <해변의 길손>으로 제1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내가 대학 시절엔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해마다 사서 보았는데 집에 한승원씨와 임철우씨의 그책이 아직도 있다.
한 강씨가 제29회 이상문학상을 받았으니 대단한 부녀지간이지 않은가.
이과계 대학을 다닌 내가 왜 이상문학상에 관심을 가졌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다정한 부녀의 모습
[몽고반점]
몽고반점(蒙古斑點)이란 갓난아이의 엉덩이, 등, 허리, 손등, 발등 따위에 멍든 것처럼 퍼렇게 되어 있는 얼룩점.
몽고 인종에게서 흔히 발견되므로 이런 명칭이 붙었는데, 다섯 살 정도에 자연히 없어진다.
이 작품의 화자는 비디오 아티스트인 30대 중반을 넘어선 남자 <나>이다.
대학교 앞에서 화장품 가게를 하는 생활력 강한 인혜라는 여자가 아내이고, 아직 어린 아들 지우도 있다.
어느 날 인혜에게서 처제인 영혜에게 아직도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강력한 예술적 영감을 받음과 동시에 주체할 수 없이 영혜의 몸을 원하게 된다.
처제인 영혜는 어린 시절에 개에게 물리고 그 개를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매달고 동네를 몇 바퀴를 돌리고 난후
저녁 상에 올려진 사건이 잠재 의식 속에 남아 있었다.
그것이 갑자기 결혼 후 몇 년이 지난 후 끔찍한 꿈으로 나타나 그 때부터 모든 고기를 거부하게 된다.
함께 사는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모습이지 않았나 싶다.
영혜의 남편도 처음엔 이해하려고 애썼다.그러다가 처가 식구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고기 먹기를 거부하는 영혜에게 억지로 아버지가 고기를 입에 넣어주려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손목을 긋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 후 영혜는 홀로 남겨지고 언니와 잠시 지내다가 혼자 살고 있다.(채식주의자에서 자세히 나옴)
<나>는 처제인 영혜를 설득해서(뒤에 보니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며 스스로 식물이 되려고 했다.)
온몸에 강렬한 느낌의 화려한 꽃들을 가득 그려놓게 되고, 파트너를 후배에게 해달라고 했다가 극적인 장면에서 거절당하게 되자
옛 애인인 화가에게 찾아가 자신의 몸에 꽃을 그리게 한뒤 처제에게 찾아가 자신이 생각했던 장면을 비디오로 찍게 된다.
그 밤이 지나고 다음 날 낮이 되었을 때는 차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다가와 있었다.
동생이 걱정된 인혜가 밑반찬을 싸들고 와서 촬영해둔 비디오를 모두 다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잔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신 병원 구급차를 부르고, 두 사람은 실려간다.
몸에 남아있는 몽고 반점에 사로잡혀 가정을 파괴할 정도로 예술혼에 불타 있던 그의 예술적 당위성이
과연 얼마나 호응을 받을 수 있을까 싶다.
결국 모든 상황은 평범한 내가 봤을 때는 아주 좋아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도 그 아름다움이란 사막같은 덧없음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편하게 볼 수 있었던 이야기는 아니었고 생각해야 할 상징이 꽤 있었지만 책장은 금세 넘어갔다.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는 >어린 시절의 잠재의식이 어느 날 핏빛 선연한 꿈으로 나타난 후부터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남편이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람이 어떻게 식물이 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현상으로써가 아닌
그것의 상징을 헤아려본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육식이 가지는 잔인한 속성에 항거해 스스로 나무가 되려하는 영혜를 가족 그 누구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외로웠고 홀로 사그러 들어간다.
<몽고반점>에도 이미 나온 바 있는 친정 식구들과의 모임 이야기가 또 나온다.
<나>는 영혜가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을 식구들을 동원해서 도움을 받아보려고 했었다.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영혜에게 아버지가 억지로 고기를 입에 넣자
영혜는 아주 짧은 순간에 자신을 자해하고 만다.
가족들 앞에서 그런 일을 하기가 정말 쉽지 않을텐데 영혜의 정신이 이미 많이 아파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일로 인해 영혜는 정신 병동에 갇히고 나는 그런 영혜와 사는 일이 도무지 자신없어 헤어지게 된다.
평소에 <채식주의자>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영혜처럼 극단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어린 시절 겪었던 사건이 몸 속에 강렬하게 각인이 되어 있어 그랬던게 아닐까 싶다.
[나무불꽃]
세번째 이야기인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인 인혜가 이끌어간다.
처제와의 비디오 촬영 사건 후로 간데없이 사라져버린 남편의 빈 자리를 기억 속에서 지워가며,
가족들마저 외면한 어쩌면 밉기까지 할 영혜의 병수발을 인혜는 도맡아 하고 있다.
영혜가 사라져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영혜를 찾아간 인혜는
식음을 전폐하고, 링거조차 받아들이지 않아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영혜를 만난다.
진짜 나무처럼 물과 햇빛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얘기하는 영혜를 보며 인혜는 어떤 말도 동생에게는 소용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영혜는 자신이 이제 곧 나무가 될 거라고 말한다. 간간이 따뜻한 햇볕 아래로 나가 웃옷을 열고 가만 앉아 있기도 한다.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영혜의 건강 상태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여서 의료진은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려고 하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한 의료진의 시도를 보다못한 인혜는 영혜를 큰병원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영혜는 죽음이라는 것보다는 오로지 식물이 되기만을 원하니 동생이 안타깝고 원망스럽기만 하다.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가진 영혜를 둘러싼 세 사람인 남편, 형부, 언니인 인혜가 화자가 되어
전개되어진 이야기들이 쉬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비범한 이야기이지만,
어린 시절의 단순한 사건이 한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아이 셋을 기르는 나로서도 그냥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가련한 그녀들을 읽고 난 후, 마음이 개운하지는 않다.
책의 표지그림인 에곤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들